청동기 시대에는 무늬 없는 토기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무늬 없는 토기는 모래가 많이 썩인 만큼 단단 하여 실용적 이였다.

또한, 홍도와 흑도가 만들어 졌는데, 모래가 섞이지 않고, 제작이 까다로우며, 수량도 적어 의식용이나, 제례,부장품 등의 특수한 목적으로 쓰이었다

홍도와 흑도는 중국 화남성을 중심으로 한 회도의 영향을 받아 고온에서도 견디는 내화도가 높은 질을 찾아내고, 물레를 제작하여, 화도 1000도 이상의 그릇을 구워 낼 수 있게 되었다, 흑도와 회도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그릇을 와질 토기라 하고, 이는 자기의 근원이 된다.


청동기 시대의 유물로는 덧띠 바리 고, 그릇 모양이 어깨에서 배 부분까지 완만하게 커지다 바닥 부분에서 작아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몸체는 밑에 부풀어진 원통형이고, 바닥의 굽은 비교적 높은 민 무늬 토기로서 구연부에 덧띠를 둥굴게 말아 붙여 사용했다.

민 무늬 토기의 제작상 특징은 구연부를 이중으로 만드는 수법이 다양하게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청동기 시대의 빗살 무늬 토기와 민 무늬 토기는 지금 사용하는 옹기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삼국 시대에는 국가 별로 약간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었다.고구려는 황갈색이나 검은색이 전형적이었고 문양이 거의 없었다, 고구려의 토기는 후기로 갈수록 아가리 부분이 넓어지고 몸체가 가늘어 진다.백제 토기는 삼한의 영향을 받아서 경질 토기가 주종을 이루고 고구려와 가야의 영향도 나타난다, 백제는 다른 나라보다 먼저 기술을 습득하여 경질 토기에 녹갈색의 유약을 입혀 녹유기를 만들었다.


백제는 가마에서도 많은 발전을 보였는데, 언덕을 따라 올라가 축조한 반지하식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고화도를 효율적으로 유지 시켜주어 보다 더 견고한 도기를 만들 수 있게 하였다, 조금 더 발전하여 나중에는 창불 구멍을 낸 것도 나타난다.신라도 삼한의 영향을 받아 회 청색 경질 토기와 적갈색 연질 토기가 주종을 이룬다.
토기의 형태는 목이 길거나 짧은 항아리, 굽 다리 접시가 기본형인데, 무늬가 기하학적인 무늬에서 도장 무늬로 바뀐다.후기가 되면서 굽 다리가 낮아지고 문양도 없어져 통일 신라 토기로의 이행이 일어난다.


통일 신라 때부터 만들어 지기 시작한 청자는 12세기 고려 시대로 접어들어 발전을 거듭 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인정하는 우리만의 독창적인 고려 청자를 생산하게 된다, 또한, 신라에는 토우라는 특징적인 것이 만들어 졌다.

고려 시대로 오면서 토기는 더욱 발전을 하게 된다 토기로 쓰일 뿐만 아니라 도자기로써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중국의 자기 기술을 받아 들여 청자를 만들게 되니 바로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려 청자 이다.또한, 경질 토기의 발전으로 저장성이 우수해서 항아리 등으로 쓰이게 되었다.


15세기경에는( 고려말 - 조선초 ) 분청 사기가 제작되어 꽃을 피우지만. 유교적인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조선시대에는(17C) 수수한 순백색의 백자가
조선 선비의 사상과 융화 되어 조선말기 까지 이어간다. 옹기도 조선 초에 자리를 잡아 가기 시작 되었다.
[경국 대전], [동국 여지승람], 세종 지리지 등에서 보면 도기소 와 옹장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실 생활에 많이 사용되어지고, 매우 중히 여긴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옹기와 조선시대에 사용 되어진 옹기가 거의 같다고 보면 될 것이다